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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대부도와 인천시 옹진군 영흥도 사이에 있는 작은 섬 선재도. 배를 타야만 갈 수 있었던 선재도는 2000년 11월 선재대교가 개통하며 대중교통으로도 쉽게 오갈 수 있게 됐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어느 날, 탁 트인 바다를 보고 싶은 날, 부담 없이 찾기 좋은 곳. 작은 일탈을 찾아 선재도로 떠났다.
우리나라 서해안은 해안선의 모습이 다채롭다. 바다가 육지에 둘러싸인 형태의 만(灣)부터 한반도처럼 세 개의 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 형태의 지형, 육지가 바다를 향해 돌출돼 있는 곶(串), 선재도처럼 육지 주위가 완전히 바다로 둘러싸인 섬 등 다양한 형태의 지형을 만날 수 있다. 유럽의 북해 갯벌과 아마존 하구 갯벌, 미국 동부, 캐나다 동부의 해안 갯벌에 이어 우리나라의 서해안 갯벌은 세계 5대 갯벌 지역으로 포함될 만큼 유명하다.
특히 선재도는 섬 주변 풍경이 아름답고 물이 맑아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놀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려 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선재도는 ‘영흥도를 어미 소처럼 따라다니는 송아지 섬’이라고 해서 소우도라 불리다가 1871년 지금의 지명으로 바뀌었다. 1914년에는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안도, 호도, 측도, 주도를 병합해 경기도 부천군 선재리에 편입됐다가 1973년 인천시 옹진군에 편입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부도와 연결된 선재대교를 지나면 왼쪽에 작은 섬이 하나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으로 꼽힌 목섬이다. 무인도인 목섬은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고 해양생물이 풍부해 2000년부터 특정도서 제15호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미국 CNN의 아시아 문화정보매체 (CNN Go)는 지난 2012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33곳을 선정하며 이곳을 가장 으뜸으로 꼽았다. 만조일 때는 섬이지만 물의 수위가 낮아지는 썰물 때에는 선재도에서 목섬으로 향하는 모랫길이 열려 ‘모세의 기적’을 볼 수 있다. 때가 맞아야 볼 수 있는 귀한 풍경이다.
때마침 목섬으로 향하는 길이 열려 있었다. 선재대교를 지나 바로 오른쪽으로 차를 돌리면 선재어촌체험마을이 있다. 평일이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목섬을 거닐고 있었고, 바구니를 챙겨 들고 갯벌을 체험하고 있는 가족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질퍽이는 갯벌 사이로 개울처럼 흐르는 바다의 물결을 따라 햇빛이 반짝였다. 모래와 조개가 섞인 길을 따라 자박자박 발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재미있다.
몽돌 바닷가에서는 파도에 돌이 부딪히는 시원한 소리가, 백사장에서는 맨발로 걸을 때 발가락 사이로 흘러가는 부드러운 모래의 감촉이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서해의 갯벌에서는 신비로운 지구의 움직임을 눈으로 직접 관찰하면서 모래와 조개를 선녀들이 춤을 추는 섬 밟으며 걷는 재미가 있다. 촉촉한 갯벌에 반짝이는 햇빛과 파란 하늘에 떠 있는 실구름은 선재도에 전해지는 이야기처럼 춤추는 선녀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마을 스피커에서 만조를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서해안의 밀물 속도는 성인의 걸음보다 2~3배 정도 빠른 10km/h라고 한다. 주변 풍경에 넋 놓고 있다 보면 바닷물은 순식간에 차오르기 십상이다. 방문객들의 안전을 위해 선재파출소 직원 두 명이 멀리서 걸어왔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서둘러 목섬을 빠져나간다.
마을을 조금 둘러보기로 했다. 선재어촌마을이 있는 선재2리는 마을경관사업을 통해 새롭게 정비됐다. 마을의 노후한 창고를 철거해 블록 담장과 돌담을 쌓고 골목 구석구석 벽화를 그려 넣었다. 나무에 아직 새순이 돋지 않은 2월이지만 마을 벽화에는 초록 나무와 꽃이 가득한 들판이 펼쳐졌고 목섬과 측도를 배경으로 만선의 꿈을 실은 어선이 갈매기와 함께 항해하고 있었다.
당너머 해변 남쪽에 위치한 선재2리는 40~50m의 각진 지역에 있어 ‘각진말’이라고 불리다 변음돼 ‘갑진말’로 불리고 있다. 1950년 6.25전쟁 이후 황해도 지역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이곳에 터를 잡아 살게 되면서 마을을 이뤘다. 세월이 지나며 여러 사업으로 이름에서 유래한 각진 곳은 없어졌고 완만해졌지만 주민들은 팻말을 세워 이곳의 기억하고 있다. 선재도와 영흥도 일대에는 익령군(翼靈君)의 역사를 간직한 17개 코스의 걷기 좋은 올레길도 마련돼 있다. 익령군 왕기(王琦)는 고려 말 나라가 망할 것을 알고 이곳으로 피신해 신분을 숨기고 은거하며 후손들의 화를 피하기 위해 옥(玉) 씨와 전(全) 씨로 성을 바꾸고 목자로 살았다고 전한다.
17개 코스 중 선재도에는 측도목데미길(선재1리)과 선재뱃말길(선재2리), 당산길(선재2리), 버드러지너출길(선재3리) 등 4개의 올레길이 있다. 나머지 올레길은 영흥도에서 만날 수 있다. 선재어촌마을에 있는 선재뱃말길을 따라 걷는다. 작업하는 어업인의 모습과 길 따라 펼쳐진 망둥어 건조대의 풍경이 이색적이다. 걷는 걸 좋아한다면 마을을 빙 둘러싼 트래킹 코스를 걸어 보는 건 어떨까. 날씨가 따뜻해지면 이곳에서는 갯벌과 낚시 체험도 진행한다.
오감이 충족될 때 기억은 더욱 선명하게 남는다. 여행에 빠질 수 없는 식도락. 목섬이 훤히 보이는 식당에 들어갔다. 영양굴밥과 해물뚝배기로 바다내음 가득한 식사를 마친 뒤 식당 앞에 마련된 포토존에 앉아 다시 한 번 목섬을 멀리서 바라본다. 가까이서 볼 때와는 사뭇 다르다. 나뭇가지 사이로 목섬의 모래길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뒤 해변가 앞에 위치한 카페로 향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선재도를 지키고 있는 뻘다방이다. 카페 사장님은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으로 일하고 싶어 손수 카페를 꾸몄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이곳 분위기는 이국적이었다. 카페 곳곳에는 방문객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 마련돼 있다. 체 게바라의 모습이 그려진 벽화와 나무로 만든 커다란 그네, 바닷물에 녹이 슨 옛날 의자, 낡은 서핑보드와 바람에 흩날리는 가랜드. 마치 다른 나라에 와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추운 날씨에도 얇은 옷을 예쁘게 차려입은 한 무리의 소녀들이 우르르 몰려와 포즈를 취하며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바다를 산책하는 가족들, 해변가로 내려가 모래를 만지며 놀고 있는 아이들⋯. 시원한 바람과 귓가에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 카페 밖으로 은은하게 번지는 커피향을 느끼며 한참을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다가 카메라에 멋진 풍광을 담아낸다.
카페 왼쪽으로는 바다 한가운데 목섬이, 반대 방향에 보이는 측도는 선재도의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으로 바닷물이 빠지면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는 잠수 도로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선재도와 가깝다는 의미의 측도(側島)이기도 하며 물고기가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물이 맑아 바다를 측량할 수 있다는 의미의 측도(測島)이기도 하다. 일몰이 시작됐다. 따뜻한 커피와 빵으로 얼어붙은 손을 녹이다 밖으로 나와 노을을 바라봤다. 사진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카페 사장님이 보여주신 노을 사진이 떠올랐다. 간조 때 얼어붙은 소금 조각 위로 붉은 노을이 내려앉은 모습은 지금 눈앞에 펼쳐진 노을과는 또 다른 강렬함이 있었다. 선재도에서 보낸 하루는 마음속 가득했던 걱정거리를 없애기에 충분했다. 소금 조각 위로 떨어지는 노을을 보러, 영흥대교 사이로 떨어지는 노을을 보러 다시 찾아야겠다고 다짐하며 발길을 돌렸다.
글 : 김혜정
사진 : 봉재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