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이 행복한 세상
친환경 농산물
생산-가공-판매의 선순환을 이어가다

원주 생명농업 박영학 대표




직접 생산한 친환경 농산물로 가공해 반찬을 만들고 로컬푸드를 통해 판매하는 선순환을 실현하고 있는 원주생명농업. 우직하게 친환경만을 고집하며 32년 동안 한 길을 달려온 박영학 대표. 그가 생각하는 농민이 행복한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친환경으로 이뤄낸 농촌융복합산업

지난해 농촌융복합산업 우수사례 경진대회에 강원도 대표로 참가해 장려상을 수상한 원주생명농업. 친환경 농업을 기반으로 유기농산물, 무농약농산물, 무항생제축산물 취급자 인증을 획득한 결과다. 이뿐만이 아니다. 계약재배와 수매한 친환경 농축산물을 이용해 현대인들의 식생활을 고려한 소포장 김치, 반찬을 개발해 직매장·공공급식·지역대형마트로 이어지는 유통구조로 지역에 우선 판매하는 농촌융복합산업화에 성공했다.





1989년 출범한 원주생명농업의 지난해 매출은 약 40억 원. 지금의 원주생명농협이 있기까지에는 박영학 대표의 헌신과 열정이 있었다. 원주시 호저면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한 곳에 거주하고 있는 박 대표가 농사를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 하지만 지역에 새로 부임한 목사를 만나면서부터 그의 일생은 큰 변화를 맞았다.

“한경호 목사님이 동네에 부임해 오셨습니다. 농업대학을 졸업하신 분이시라 저희가 모르는 것을 많이 도와주셨어요. 수확한 농산물 판매를 고민할 때에는 직거래 판로를 열어주기도 하셨고, 농업이 나아갈 길은 친환경 농업이라고 농민들에게 교육을 해주셨어요. 친환경 농업이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자연을 보호하고 땅을 살리는 것이라는 말이 가슴에 확 닿았던 거죠.”





친환경농업의 시작을 알리다

환경과 농민의 건강을 살리고 소비자도 건강한 농산물을 먹을 수 있다는 한 목사의 얘기에 그는 1986년부터 친환경 농업을 시작했다. 유기농 농산물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토지가 정화되어야 한다는 말에 오리 수백 마리를 논에 풀었다. 농약 없이도 오리가 해충을 잡아 줄 것이라는 생각에 큰 기대를 했다. 하지만 오리가 해충은 물론 벼까지 먹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벼를 다시 심고 똑같은 방법으로 오리를 논에 풀었는데 농약이 닿은 해충을 먹고 오리가 전부 죽기도 했다. 그해 쌀 수확량은 평소의 1/3로 줄었다. 일반 농지가 유기농 농지로 완벽히 변하기 위해서는 수십 년이 걸리기 때문에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해야 한다는 한 목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과 같은 뜻을 가진 농민들과 함께 친환경농법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정농회에 가입해 교육을 받았고 전국의 정농회 회원의 농가를 방문해 친환경 농업으로 수확한 농산물을 직접 확인하기도 했다. 어떤 농작물을 육성해야 하는지도 여기서 배웠다. 그 사이 5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풀을 베어 논에 뿌렸다. 논이 정화되고 건강해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쌀 수확량은 조금씩 늘어갔다. 그러자 농약을 뿌리면 될 일을 왜 고생하냐고 하던 사람들도 그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원주 전체가 벼멸구 확산으로 병해충 긴급 방제로 정신없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제 논은 멀쩡했어요. 그때서야 ‘농지가 깨끗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토지가 다시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 가까워지자 병해충의 피해도 줄었던 것이다. 이런 소식은 금세 알려졌다. 화학비료 없이 우렁이와 쌀겨를 이용해 생산한 친환경 쌀 ‘오리 농군, 우렁 각시’와 무항생제 축산물 인증을 받은 ‘유정란’이 좋다는 입소문이 퍼져 해마다 매출이 상승했다.



1. 무항생제 축산물 인증을 받은 유정란은 원주생명농협의 인기 품목이다
2. 제철 채소를 이용한 김치와 반찬, 메주 등의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는 제철 신선 반찬공장

생산부터 판매까지 원스톱

주문량이 쇄도하자 2004년에는 친환경농산물 공동물류센터를 구축했고 2007년에는 한우입식을 도입했다. 2009년에는 친환경벼 전문도정공장과 공동선별장을 만들었고 지속가능한 지역순환농업 모델을 만들었다. 하지만 2014년 38억 원의 매출을 올린 뒤로는 해마다 매출이 감소했다. 쌀값 하락, 유정란 생산량 감소, 기후변화의 영향이 있었지만 가정간편식 시장이 커지는 소비문화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었다. 1차 산업만으로는 한계에 도달했다고 판단한 원주생명농업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공식품산업 진출과 공공(지역)시장의 진입을 본격 모색했다.

때마침 2015년 강원도에서 유기농산물 제조·가공시설 지원사업(현재 친환경농산물 가공시설 지원 사업) 공모를 실시했다. 원주생명농업은 강원도와 원주시의 지원을 받아 친환경채소류를 원재료로 반찬가공 사업을 시작했다. 162명의 지역 농업인 회원들이 원주생명농업과 계약재배한 쌀, 복숭아, 채소 등 16개 품목은 유기농산물, 무농약농산물, 무항생제 축산물 취급자 인증을 획득하고 주 거래처인 두레생협과 학교(서울 등 공공)급식, 지역 로컬푸드매장 등으로 공급했다.



2017년에는 ‘농촌융복합산업’ 인증을 획득하며 제철신선반찬공장을 완공해 제철 채소를 이용한 김치와 반찬, 메주 등 친환경 제품을 생산했으며 2018년에는 친환경·로컬푸드직매장을 개장하며 생산자에게는 판매활로를, 소비자에게는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생산-가공-판매의 선순환 구조를 완성했다. 현재 원주생명농업은 생채류, 복숭아, 서류, 유정란, 메주 등은 친환경농산물 물류센터가, 쌀은 전문도정공장이, 반찬들은 제철신선반찬공장에서 유통을 책임지고 있다.



농민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다




박영학 대표는 2017년 원주생명농업을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했다. 발생한 수익을 지역에 환원하겠다는 평소 생각을 고용 확대라는 방법으로 대신한 것이다. 원주생명농업은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한 뒤 농민 조합원의 친환경채소류 계약재배를 통해 생산활동을 지원하고 지역농업인 2세, 농촌여성, 두레귀농학교 졸업생을 고용하며 소비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지역발전을 위한 선순환의 고리를 맺어가고 있다.

그는 또 농촌고령자, 귀농희망자를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사회적농업 사업의 하나로 친환경농업단지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농촌형 사회적 기업으로서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상생모델 형성에도 애쓰고 있다. 벼 수확을 비롯해 유기사과 수확, 복숭아 및 찰옥수수 수확, 양파 수확, 장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과 어린이농촌캠프, 농촌일손돕기 등의 행사에 참석한 인원은 연 1,200여 명에 달한다.



3. 유기농산물, 무농약농산물, 무항생제 축산물 취급자 인증을 획득한 친환경농산물을 활용한 반찬은 제철신선반찬공장에서 학교 급식으로 공급된다.
4, 5. 학교 급식재료로 판매될 예정이었던 유기농 저장용 감자가 배송을 기다리고 있다.

그가 꿈꾸는 농업은 어떤 모습일까.
“환경을 살리고 건강도 지키고 소비자와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은 친환경 농가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주만이 아닌 강원도 전체를 친환경 농가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친환경 농가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야 결국 소비자도 믿고 건강하게 먹을 수 있으니까요.” 그가 얘기한 밝은 내일이란 농촌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박영학 대표가 말하는 모든 농촌이 행복한 세상을 바라본다.


QR코드를스캔하시면 원주생명농업 박영학 대표의 인터뷰 영상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글 : 나덕한
사진 : 봉재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