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꿈을 키우던 공간
지역 문화예술의 場으로

당진 아미미술관




아이들이 함박웃음과 뛰놀던 소리가 사라진 폐교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은 특별한 미술관이 있다. 빌딩 사이가 아닌 우거진 숲 속에서 예술을 만날 수 있는 이곳, ‘아미미술관’은 10여 년간 예술작품의 전시와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지역 문화예술의 중심이 되었다.



옛 초등학교 건물을
그대로 간직한 미술관

버스 정류장이 보이는 논길 옆, 나무가 무성한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면 하얗고 작은 건물이 반겨준다. 과거 초등학교였던 이곳은 이제 ‘아미미술관’이라는 새 이름으로 초등학생 대신 지역 주민과 전국의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미술관으로서 운영된 지 10년이 되었지만, 이곳은 아직도 옛 초등학교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관장인 박기호 구현숙 작가 부부는 “무언가를 더해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모습 그대로를 되살리는 것”에 중점을 두고 미술관 개장까지 오랜 시간을 준비했다고 한다. 폐교였던 이 공간에 담긴 기억을 보존하여 관람객이 부담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마음에서다.

유성초등학교는 과거 순성국민학교 성북분실로 처음 설립되었다. 학생 수가 늘면서 1967년 유동국민학교로 승격됐지만 지역 인구 감소로 1992년 다시 유동분교로, 이듬해 순성초등학교로 통합되면서 학교는 폐교되었다. 박기호 구현숙 작가 부부는 이 폐교를 1994년부터 임대하여 미술관 개장을 준비했다.

학교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미술관의 기능으로 만들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학교 건립 당시 창문을 만든 목수를 수소문 끝에 찾아 옛 나무 격자 창문틀 제작을 부탁하고, 벽과 천장은 관장 부부가 하얀색 페인트로 덧칠했다. 모두 갈아엎는 것보다 일일이 고쳐가며 유지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이지만 관장 부부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묵묵히, 그러나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들 듯 심혈을 기울여 미술관을 가꿔나갔다.

그렇게 2010년 10월 11일 개관하고, 이듬해 6월 4일 개관전을 연 아미미술관은 학교와 미술관, 그리고 자연까지 모두 품은 공간으로 거듭났다. 하얀 미술관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옛 학교의 추억인 마룻바닥 복도가 펼쳐지고, 교실이었던 공간은 설치미술과 회화 작품들이 놓였다. 교장이 머물렀던 한옥 사택, 심지어는 화장실 벽면까지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했다. 유일하게 바뀐 곳이 있다면 운동장이다. 아이들이 뛰어놀던 흙 벌판은 나무와 꽃이 펼쳐진 정원이 되어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1. 빌딩숲에서 볼 수 있는 곳이 아닌 푸른 나무와 맑은 공기 속에서 예술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미미술관의 장점이다
2. 마룻바닥 복도가 펼쳐져 있고, 교실이었던 공간은 설치미술과 회화 작품들이 놓여 있다
3. 전시뿐만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공간으로도 유명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성장하는 미술관

‘아미’라는 미술관 이름은 산의 능선이 여인의 아름다운 눈썹을 닮아 이름 지어진 아미산자락에 위치했다는 의미도 있지만, ‘ami’는 프랑스어로 친구를 뜻하기도 한다. 가깝고 친근한 미술관이자 지역의 건축과 문화, 풍속, 생활상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개방하는 생태미술관이 되고자 하는 박기호 구현숙 관장 부부의 마음이 담긴 이름이다.
“젊은 시절에 배낭여행을 하면서 덴마크 동부 해안에 자리 잡은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어요. 자연경관을 오롯이 담아내는 미술관 전경에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때 기회가 된다면 이런 미술관을 꼭 만들겠다고 다짐했지요.”

박기호 관장은 파리에서 유학을 마치고 고향인 당진으로 돌아와 작업실을 찾던 도중 폐교된 유동초등학교를 발견했고, 조금씩 내부를 고쳐가면서 미술관을 운영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다만 도심지의 미술관보다는 먼지 쌓이듯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하나씩 완성되어가는, 아울러 자연의 일부처럼 어우러지는 미술관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4. 박기호, 구현숙 부부는 조금씩 내부를 고쳐가면서 아주 천천히 하나씩 완성되어가는 미술관으로 만들고 있다
5. 아미미술관은 매년 봄, 주목할 만한 작가를 초대해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소통과 화합의 미술관

미술관 개장에는 지역 주민과의 소통도 중요했다. 2010년 폐교된 유동초등학교를 매입할 당시에는 졸업생과 마을 주민의 매입 반대의견이 있었다. 모교에 대한 애정과 마을 학교가 없어진다는 상실감이 컸던 이유에서다. 박기호 관장은 주민들에게 “농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먼저 태동한 예술 행위이며 예술은 고된 노동과 노력으로 결실을 맺는 농사”라며 미술관이 가진 사회적 기능과 역할,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설명한 끝에 지역 구성원 모두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구현숙 관장은 현재 연간 15만 명이 아미미술관에 방문하면서 소외된 농촌 마을과 타지역 관람객들 사이에 소통의 다리를 놓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린이 미술제와 다문화 가정 작품 활동, 초등교사 미술 교실처럼 지역사회의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개최하고 있습니다. 작가와의 만남, 인문학 강의 등 전국 각지에서 방문하는 관람객이 현대미술을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토크콘서트도 마련했고요. 문화예술의 활성화를 위해 단순한 전시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새로운 콘텐츠를 꾸준히 여는 것이 저희 아미미술관의 모토입니다.”

최근에는 당진 지역의 역사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배나 건물, 생활도구 등 시간의 흐름 속에서 쉽게 사라져 버릴 수 있는 것들을 수집하여 복구, 보존하여 지역사회와 공유하는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있다. 이처럼 아미미술관은 단순한 예술작품 관람의 기능을 넘어 소통과 화합, 공유의 장으로 발전하고 있다.

매년 봄, 아미미술관에서는 주목할 만한 작가들을 초대하여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해왔다. 이번 전시회는 ‘2020 아미의 작가들 展’이라는 이름으로 김덕용, 전소영, 정기웅, 최효순 등 네 명의 작품 세계를 전시실에 꾸며놓았다. 박기호 구현숙 관장은 이맘때가 미술관 주변에 꽃이 가장 많이 피는 시기라며, 알록달록한 꽃과 푸른 새싹이 움튼 숲 속에서 다채롭고 신선한 미술작품을 관람해보길 바란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저 쉬이 보내기는 아쉬운 봄날, 따뜻한 햇볕을 벗 삼아 조금은 색다른 나들이를 계획하고 있다면 아미미술관을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자연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작품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글 : 김부국
사진 : 봉재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