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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천천히 걸어도 괜찮아!
청록사진관 김수빈 씨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한 김수빈 씨는 출근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아침이면 뛰어다니는 삶을 살았다. 귀촌한 지 2년, 이제는 사진관의 문을 열며 느긋한 아침을 맞이한다. 그녀에게 ‘곡성’에서의 삶은 ‘천천히 걷는 것’이다.
서울과의 이별 그리고 찾아온 곡성
사진관 전면 통창으로 햇살이 가득 들어온다. 복고풍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레트로 감성으로 꾸며진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곡성군 곡성읍에 위치한 청록사진관의 풍경이다. 이곳은 여느 사진관과는 다르다. 시골의 작은 마을에 가게가 오픈한다고 했을 때 주민들은 무엇이 들어올지 궁금했을 것이다. 감각적인 인테리어로 문을 연 것은 바로 사진관. 번화가도 아닌 주택가에 자리 잡은 사진관은 지역 주민이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사진을 전공한 작가도 아니다. 대학시절 사진관에서 아르바이트한 경험과 여행사진을 찍고 편집했던 취미를 살려 서울에서 내려와 사진관을 오픈한 29세 김수빈 씨이다.
김수빈 씨는 2년 전까지 남편과 회사를 다니며 서울살이를 감당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감당이었다. 회사 생활을 하며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주말이면 평일을 보상이라도 받듯 무엇을 하는 데 급급해 여유로운 일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엎친 데 덮쳐 이사 갈 집을 알아보는데 집값이 터무니없이 비쌌다. 그 값을 치르며 굳이 서울 생활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남편이랑 시골생활에 대해 막연하게 얘기하다 집 문제가 터지면서 구체화가 되었어요. 다른 지역도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은 많았지만, 시골생활을 이해하는 데 한 달은 부족할 거 같았어요. 마침 곡성에서 100일 동안 살아보는 <청춘작당 시즌1 청년, 귀촌하다> 프로젝트가 있어 신청해 살다가 아예 눌러 앉게 되었지요.”
일상이 여행이 된 곡성에서의 시간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부터 곡성으로 귀촌할 마음을 먹었다는 김수빈 씨. 청춘작당을 운영하는 친구들, 주변 상인, 동네 어르신들까지 새로운 삶을 응원해 바람은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부부를 보며 주변 가족들은 걱정했다. “시골 가서 뭐 해 먹고살려고 하느냐”, “농사는 지어봤냐” 하는 우려들이 들려왔다. 그러나 김수빈 씨와 남편은 걱정하지 않았다. 곡성에서 100일 동안 살면서 귀촌해 어떻게 살 것인지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다. 한 사람은 직업을 구하고, 한 사람은 창업을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김수빈 씨가 창업을 준비했다.
2020년 1월 곡성군으로 귀촌해 그해 2월 ‘2020년 곡성군 청년창업 지원사업’에 선정돼 9월 청록사진관을 오픈해 자리를 잡기까지 일 년도 걸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젊음의 승리였다. 사진관을 창업하게 된 이유는 가장 자신 있고 좋아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진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대학생 시절부터 사진관에서 장기간 아르바이트하며 사진관 운영에 관한 노하우를 배웠고 졸업 후에는 여행사에 근무하며 여행지 사진을 찍고 편집하는 일을 도맡았기에 1인 창업으로 사진관이 가장 자신 있었다.
곡성읍 청록사진관에서 맞는 30대
‘청록’이라는 사진관 이름을 짓기까지 고민도 많았다. 작은 시골 마을에 어울리는 이름을 짓고 싶던 김수빈 씨는 ‘기록하다’라는 문장에 꽂혀 ‘록’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단어를 다 뽑아 놓고 그중에 최종적으로 ‘청록’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사진관을 오픈했을 때만 해도 카페인 줄 알고 찾아오는 고객도 있고 “진짜 사진 찍느냐”고 물어오는 손님도 있었다. 처음에는 증명사진이나 신분증용 사진을 찍는 고객이 많았는데 현재는 가족사진과 우정사진과 같은 콘셉트 사진을 찍는 고객이 늘었다. 3만 명도 채 되지 않는 군 단위 지역이라 수요가 많지는 않지만 최근에는 곡성 공공기관에서도 문의를 주어 큰 도움이 되고 있단다.
“얼마 전에 서울에 볼일이 있어 올라간 적이 있어요. 지하철이 들어온다는 안내 방송에 제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는 거예요. 집에 와서 ‘지하철은 2분마다 들어오는 데 왜 그리 빨리 걸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울이 저에게는 그런 곳이더라고요. 곡성에 있는 제 삶에 너무 만족해요.”
김수빈 씨는 처음 곡성으로 귀촌했을 때만 해도 얼마나 살 수 있을지 가늠이 안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천천히 걷지 않아도 되는’ 곡성에서 맞는 아침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스물 아홉 해 끝자락에서 섬진강 무릉도원 침실습지의 새벽 물안개를 좋아하는 김수빈 씨는 서울 사람 아니고 이제 곡성 군민이다. 아니 진즉 곡성읍 주민이다.
청록사진관
전남 곡성군 곡성읍 군청로 60-1 1층
https://bluegreenlog.modoo.at/
인스타그램: bluegreen_log
글 이선영 사진 홍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