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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계획하지 않아도 괜찮아!
말순농장과 비봉국수를 운영 중인
조정은 씨
한국마사고와 전주기전대학 마사과를 졸업하고 도시에서 10년간 승마 코치로 일하다 고향 완주 비봉으로 귀촌해 작은 국숫집과 말농장을 운영하는 청년 사업가 조정은 씨. 그녀의 새로운 꿈에 대한 이야기다.
15년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비봉
“귀촌은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꿈에서부터 이미 시작되는 거 같아요. 저는 계획적인 사람이 아니에요. 그런데 막연하게 고향으로 내려가 농장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거죠. 귀촌에 있어 계획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고등학교 때부터 승마 코치로 일할 때까지 타지에서 15년을 보낸 정은 씨가 2020년 고향 완주로 귀촌한 것은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생활에 지쳐 갔기 때문이다. ‘승마 코치’라는 직업이 남들의 눈에는 근사해 보여도 온종일 밖에서 일하다 보면 육체적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직장생활의 스트레스와 관계에서 오는 회의감까지 겹쳐 왔다. 그 무렵 ‘고향 비봉으로 돌아가 말을 키우며 농장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눈덩이처럼 커져 갔다.
“비봉은 제 고향이자 부모님과 여동생이 살고 있는 곳으로 늘 마음의 터전 같은 곳이에요. 마침 감 농사를 짓고 있던 여동생이 비봉으로 돌아와 체험 말 농장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어요. 부 모님과 오래 떨어져 있는 생활이 길었기 때문에 이제는 함께 지내고 싶다는 마음도 컸고요. 망설일 이유가 없었죠. 다 정리하고 귀촌하게 되었어요.”
말 농장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주 수입원이 필요했다. 그때 정은 씨가 정한 아이템은 ‘국수’. 국수를 선택한 것은 만들기가 까다롭지 않은데다, 좋은 식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한다면 맛도 여느 국숫집에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또 익산 IC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는 비봉의 지리적 특성상 간단하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식사를 찾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계획 없이, 막연히 귀촌을 했다고는 하지만 사업 아이템을 정하고는 모든 것이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가게 자리를 알아보는 것부터 시작해 사업자등록 및 영업신고까지, 혼자서 감당하기에 벅찬 순간들이 많았지만 결국 2020년 5월 ‘비봉국수’를 오픈했고, 국숫집을 하며 모은 자금으로 이듬해 5월 말순농장까지 열었으니, 그의 추진력이 대단하다.
고향 비봉을 모르는 사람이 없도록
현재 ‘비봉국수’는 운영 방식을 바꿨다. 정은 씨 혼자 두 가지 사업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라 생각해 비봉 청년 8명이 설립한 ‘영농조합법인’에 소속되어 국수 가게를 이어가고, 말순농장은 오롯이 혼자 힘으로 운영하고 있다. 새벽 6시면 정은 씨의 하루가 시작된다. 말밥을 주고, 마방을 청소한 뒤에는 오후 3시까지 국수가게에서 국수를 삶고, 다시 오후에는 말 관리가 시작된다. 그야말로 눈 코 뜰 새 없이 흘러가는 하루다.
“물론 바빠 보일 거예요. 하지만 도시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여유를 순간순간 즐길 수 있어요. 말밥을 줄 때 말들과 교감하고요. 국수가게와 말 농장을 오가는 길에서 미세한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도 합니다. 저녁이 되면 집 마당에서 부모님과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캠핑을 즐기고요.”
시골에서 말 농장을 할 것이라고 했을 때 친구들 모두 “무모하다”는 반응이었단다. 그런데 정은 씨의 행복한 표정을 본 후에는 “축하한다”는 응원이 이어지고 있다. SNS을 통해 말순농장의 유명세를 보고는 연락이 뜸하던 지인들도 안부를 물어온다. 주말에 관람객을 받는 말순농장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승마체험, 당근주기, 미술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오픈한 지 1년도 채 안 된 곳이지만 ‘한 번도 안 온 가족은 있어도, 한 번만 온 가족은 없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도시에서 생활할 때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완주 비봉이라고 하면 비봉이 어딘지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은 거예요. 너무 속상했어요. 그런데 인근 지역에서 말순농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비봉을 알릴 수 있어 엄청 뿌듯해요.”
차곡차곡 채워지는 귀촌의 꿈
‘말순농장’의 이름에는 조금은 특별한 사연이 있다. 정은 씨의 농장에 처음 온 말 이름은 ‘랄라’였다. 제주에서 분양받은 3개월 된 말로 4~50킬로도 나가지 않던 작은 말이었다. 초반에는 말이 아픈 날이 많았다. 그래서 정은 씨는 오래 살라는 의미로 ‘랄라’의 이름을 ‘말순’으로 바꾸고 농장의 이름도 ‘말순농장’으로 지었다. 개똥, 점박이처럼 이름을 막 지으면 ‘말순’이가 건강히 오래 살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말순이를 보면 저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시골에 내려와 좋은 일도 많았지만 적응하느라 힘들었거든요. 지금 말순이는 잘 성장해서 저희 농장 ‘대장’이 되었죠. 그 성장 과정이 저와 비슷하지 않나요? 조정은이라는 사람을 아무도 몰랐지만, 지금은 말순농장을 통해 알게 되었잖아요. 말순농장 이름에는 그런 사연들이 있어요.”
그는 농장을 스토리가 있는 공간으로 채우고 싶다며 말들과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동화책을 준비 중이다. 또 ‘비봉국수’에 이어 ‘말순농장’에서의 꿈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고. 승마체험, 먹이주기, 말과 교감하기, 농산물 수확, 미술체험 등에 이어 올해도 알찬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는 정은 씨. 그의 여유롭고 행복한 삶의 기록이 고향 비봉에서 차곡차곡 다시 채워지고 있는 중이다. 귀촌을 꿈꾸는 청춘들에게 그가 전한다.
꿈만 있으면 그게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생각만 하다 국숫집을 하였고, 그 돈으로 말을 사고, 그 말을 위해 집을 짓고, 말이 외로울까 다른 말을 사고, 그 말들이 운동할 공간을 만들고, 사람과 교감할 수 있는 농장을 오픈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계획하지 않아도 시작하면 다 된 거예요. 시작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말순농장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소농리 482-1
인스타그램: malsoon_farm
비봉국수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천호로 542
글 이선영 사진 봉재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