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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서기

도시와 농촌 그 어딘가의 「사 : 이」에서

일도 사랑도 바빠지나,

해마다 봄을 맞는 마음이 각별한 까닭은 무엇일까. 긴 겨울의 끝에 놓인 희망이 바로 봄이기 때문일까. 한 해의 값진 수확을 위한 출발점에 선 시기가 봄이기 때문일까. 왜 봄만 되면 우리는 사랑을 꿈꾸는 걸까.

작은 대지의 정령들 축복의 징표, 봄

『리틀 포레스트』

“도시에 살다 보니까 보이더라구. 농사가 얼마나 괜찮은 직업인지. 봄에 말이야, 작은 새싹들이… 거룩한 하늘을 향한 어떤 그런, 작은 대지의 정령들? 같은 그런… 말로 표현할 수는 없는데… 그래서 난 정말 굉장히 멋진 직업을 선택한 것 같아.”

영화에서 류준열이 분한 ‘재하’의 대사다. 주인공 ‘혜원’(김태리)이 집에서 담근 막걸리를 마시고 술김에 낮게 읊조리는 이 대사는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농촌에서의 삶을 선택한 한 젊은이가 가질 법한, 농업에 대한 경외의 시선과 나름의 철학을 서툴지만 오롯이 담아낸다.

영화에서는 이른 봄에 심은 감자의 싹이 나면 그때부터 농촌에 허투루 쓰이는 시간은 없다, 고 단언한다. 과연 농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봄은 단순한 계절 그 이상의 의미다. 순리대로 이뤄질 모든 일의 시작, 또 한 번 주어진 소중한 기회, 다가올 미래를 바꾸어나갈 진취적이고도 순도 높은 시기가 봄이다. 그런 의미에서 봄의 아지랑이는 어떤 계시나 하늘의 지령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말 그대로 ‘대지의 정령', 축복의 징표인 것이다.

봄밤은 알고 있다 당신이 사랑에 빠지리라는 것을

『봄밤』

마치 풍선처럼 기분이 하늘로 둥실 떠올랐다가도, 곧잘 곤두박질치며 균형을 잃는다. 설레거나 혹은 불안하거나, 가슴은 내내 두근거리고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봄밤이 주는 정취는 연애가 시작되는 찰나의 불안정함과 닮아있다. 날이 밝으면 꽃이 피어나고 이파리가 돋아나 있듯이, 밤새 사랑의 열병을 앓고 난 연인의 사랑은 한 뼘씩 커진다.

『봄밤』은 남녀간 연애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한 드라마다. 결혼할 남자가 있는 30대 여성 ‘정인’(한지민)과 아이가 있는 ‘미혼부' 동네 약사 ‘지호’(정해인)는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속절없이 이끌린다. 서로를 멀리해야 하는 현실적 여건임에도, 서로를 향해 뻗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것. 자칫 오글거릴 수 있는 주인공들의 대사가 그럭저럭 마음에 와 박히는 데는 벚꽃이 만개한 봄밤을 배경으로 한 그 분위기가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우리 손잡을까요? 지난날은 다 잊어버리고

『민들레』

언제부턴가 봄이면, 화려하게 줄지어 피어난 벚꽃을 연상하게 된다. 봄마다 너무 자주 들려오는 통에 ‘벚꽃연금’이라 통칭되는 노래도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그런데 사실 봄엔 벚꽃 말고도 참 많은 꽃이 핀다. 진달래, 개나리, 목련 등 봄은 원래 많은 꽃들의 계절인 것이다. 벚꽃의 지분은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키가 작던 각자의 어린 시절을 한번 떠올려 보라. 아스팔트로 포장된 땅을 보며 걸어 다니던 그 시절, 그대에게 정작 봄이 왔음을 느끼게 해줬던 건 보도블럭 틈에 허락도 없이 피어나 있던 민들레가 아니었는지?

싱어송라이터 우효가 특별한 기교없이 나긋한 목소리로 부른 『민들레』를 듣고 있으면 마치 한 송이 민들레가 되어 따스한 봄볕을 쬐는 듯한 나른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우리 동네에 가요, 편한 미소를 지어주세요, 노란 꽃잎처럼 내 맘에 사뿐히 내려앉도록.” 벚꽃이 흩날리는 봄날 곁에 있을 연인이 없다 해도 슬퍼하지 말 것. 그저 소박하게 우리 동네에 오라고 말해줄 벗이 있다면 당신의 봄은 충분히 아름다우니까.

임수민(대중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