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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비우고

그들이 사는 세상

다시, 뜨겁게 질주하라

이은정 씨

잔잔한 호수에 작은 물결이 일었다.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는 이은정 교수의 일상에 파장이 일어난 것이다. 교수로 지내는 삶에 ‘L&K 모터스 카레이서’라는 직함이 더해졌다. 뜨겁게 질주하며 새로운 활동에 누구보다 진심인 이은정 씨의 세계다.

일상의 틈으로 들어온 카레이싱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자동차 경주는 누구나 한 번쯤 꿈꿔 보지만 선뜻 나서기는 어렵다. 스피드가 처지기라도 하면 뒤따라오는 자동차와 충돌하기도 하고, 늘 사고에 노출되어 있어 긴장을 늦출 수도 없다. 남자들도 섣불리 시도하기 힘든 카레이서에 뒤늦게 도전한 이은정 씨. 평소 무서운 놀이기구도 못 타던 그가 레이싱의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은 3년 전이다. 모 자동차 회사 트랙데이에 초청받아 서킷에서 처음 레이싱을 해 본 그는 겁도 없이 카레이싱 세계에 뛰어들었다.

“35세에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해 12년 동안 앞만 보며 달렸어요. 강의에 연구논문까지 작성하느라 다른 걸 생각할 겨를도 여유도 없었죠. 그러다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히고 나니 마음에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그 틈으로 레이싱이 들어온 거죠.”

그는 교수와 레이싱은 어느 것 하나 공통점 없이 정반대에 서 있다고 말한다. 교수는 논리를 분석해 가설을 만들어 수백 번 분석하고 수천 번 수정해 설득하는 자기와의 싸움이라면 레이싱은 팀워크 작업이라는 것이다. 까닭에 그는 레이싱을 두고 ‘이어달리기’라 말한다. 드라이버 실력도 중요하지만 미캐닉(Mechanic·정비공), 데이터 엔지니어 등 모든 팀원들이 협업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스포츠라는 것이다.

“3년 전 모터스포츠에 도전했을 때만 해도 그저 빠른 속도가 주는 쾌감이 좋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L&K 모터스 캠프를 만들어 팀워크로 활동하다 보니 마음이 달라졌죠. ‘같이’하는 팀원들이 잘 만들어 놓은 경기를 망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책임감과 긴장이 더 해졌어요.”

작고 거대한 나만의 우주, 카레이싱

이은정 씨는 레이싱을 단순한 취미생활로 그치지 않고, 제대로 일을 벌였다. 2021년 슈퍼레이스 최고 클래스 ‘슈퍼6000’ 개막전 경기에 참가한 것. 슈퍼레이스 챔피언십은 국내 최대 규모 카레이싱 대회다. 이은정 씨는 최연장자로 출전해 더욱 화제를 모았다.

“경력이 짧기도 하고, 경험도 적어 다른 드라이버보다 더 많은 연습량으로 기량을 올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물론 쉽지는 않은 일이었어요. 엔진 열이 그대로 차로 들어오기 때문에 내부 온도는 70도가 넘어요. 또 0.0001초로 순위가 결정되기 때문에 레이싱이 시작되는 40분 동안 딴 생각할 틈이 없어요. 늘 냉정함과 빠른 판단력을 요구하죠.”

서킷에서 연습하고 나면 한겨울에도 옷은 땀으로 흠뻑 젖는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는 레이싱을 한다. 아니 더 열심이다. 차에 탄 순간만큼은 거대한 우주로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란다. 그 세계가 자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고. 레이싱을 시작하고 그는 자신감과 대범함을 얻었다.

“200km 속도로 달리다 보면 일상에서 힘들었던 사소한 일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다가와요. 가령 발표가 부족했다는 생각에 자책이 들다가도 레이싱하고 나면 ‘앞으로 더 잘하면 되지’ 하고 대범하게 넘기게 되거든요. 그게 제 본업을 더 단단하게 지탱해 주고 있어요.”

멋지게 나이 들어간다는 것

“39세 때 엄청 힘들었어요. 곧 40이 된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49세의 저는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는 구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하는 생각조차 안 들어요. 레이싱이 인생의 속도를 잊게 해 주는 것 같아요.”

더 이상 불확실한 것도, 다이내믹한 것도 없는 평범했던 일상. 재미를 일부러 찾아서 해야 하는 인생 중반에 그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이 레이싱이라는 것이다.

“레이싱은 재미있는 지옥이에요. 이런 묘미가 없다면 제 인생은 지루한 천국이었겠죠. 지옥이라고 표현한 것은 드라이빙 테크닉을 익히고 스피드를 올리는 그 과정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렇지만 대학교수인 순간에도 이런 과정을 거쳐 지금의 나를 만들었듯이 이 과정이 지나면 새롭게 성장한 내가 되어 있겠죠.”

이은정 씨는 인생을 모터스포츠와 같다고 말한다. 레이스 도중 순간 멈추기도 하고 경기 도중 수없이 순서가 바뀐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지만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그저 목표를 두고 노력할 뿐이다. 이은정 씨처럼 말이다. 이은정 씨는 올해 목표를 ESG 경영 연구와 슈퍼6000 경기에 참가해 속도를 올리는 것으로 세웠다. 이은정 씨의 지칠 줄 모르는 도전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이봄 사진 홍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