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소확행 라이프
4인의 조금은 특별한 청춘단상
꿀벌과 사람의 공존을 꿈꾸는
최새봄 씨
‘불멍’보다 ‘벌멍’이다. 윙윙 소리를 내며 날갯짓을 하는 꿀벌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취업 대신 일찌감치 양봉업에 뛰어들며, 톡 쏘는 꿀벌의 매력에 푹 빠진 최새봄 씨는 수백만 마리를 키우는 꿀벌 집사다.
아버지 이어 2대째 양봉 시작
전북 정읍의 시골길을 한참 올라가니 공터에 가지런히 자리 잡은 벌통이 놓여 있다. 양봉 4년 차 최새봄 씨의 작업장이다. 얼핏 보면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앳된 스물다섯 살의 새봄 씨가 수많은 벌 떼가 있는 벌통을 겁도 없이 척척 만진다. 훈연기를 피워 벌들을 순하게 만든 후 “가만히 있으면 벌들은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며 잔뜩 겁먹은 취재진을 안심시킨다.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나는 농부가 될 거야’라고 입에 달고 살았어요. 정읍에서 나고 자라며 어깨너머로 양봉가인 아버지의 삶을 보고 자랐으니 양봉가가 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는지도 모르겠어요.”
농업의 순수성과 정직함 끌려 농부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최새봄 씨는 한국농수산대학 특용작물학과에 입학해 3년간 공부했을 만큼 농업에 진심이다. 그는 농업은 직업이기 전에 삶 그 자체라고 말한다. 그중에서도 아버지가 하는 양봉을 직접 해보며 건강한 꿀을 생산해 내는 일에 커다란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고 덧붙인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처음 양봉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봉독 알레르기가 심해 겨우내 봉침을 맞으며 봉독 알레르기를 이겨내는 과정을 견뎌야 했다. 그런데 그 과정을 거치니 양봉에 특별한 애착이 생겼다. 제대로 하고 싶어졌다. 현재 그녀는 양봉 300여 군을 사육하며 꿀, 로열젤리를 연구하고 판매해 지난해에만 9,000만 원의 소득을 올렸다.
벌꿀은 자연이 주는 선물이자 우리의 미래
“꿀벌이 사라지면 4년 안에 인류도 멸종할 것”이라는 예언을 남겼다는 아인슈타인. 그의 말대로라면 아직 꿀벌이 있는 지금은 희망이 있다.
“꿀벌 서식지가 줄어들고, 온난화와 진드기 영향으로 꿀벌 개체 수가 계속 감소하고 있어요.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꿀벌 집단 폐사도 큰 문제가 되고 있고요. 기후변화의 심각성이 피부로 느껴지죠. 제가 계속해서 양봉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벌들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환경을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양봉은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는 농업이다. 최근 몇 년 이상 기후로 벌꿀 생산 작황이 좋지 않은 상황이다. 까닭에 최새봄 씨는 주력 생산 방향을 벌꿀에서 로열젤리로 바꿨다. 여왕벌 유충이 먹는 로얄제리가 상품적 가치가 훨씬 높다고 판단했고, 이를 생산하기 위해 3년간 애를 쓰고 있다. 지금은 로얄제리를 대량 생산해 판매처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아직 배울 것이 많다는 그는 자기에게 맞는 방식으로 벌통을 주문 제작하며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단순히 생산량을 늘리기 위함이 아니라 꿀벌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벌을 보존하고 키우는 일은 생태계를 위해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는 꿀맛 보러 갈게요~~
“양봉은 4월 중순부터 시작해서 5~6월이 가장 바빠요. 지금 이 시기는 여왕벌에게 먹일 꿀을 채집하는 일벌들이 엄청 바쁘죠. 해가 뜨고 해가 질 때까지 꽃 군락지와 집을 오가며 강행군을 하는 벌을 보고 있으면 겸허한 마음마저 든다니까요.”
한 벌통에는 1마리의 여왕벌과 5만 마리 정도의 일벌이 집단생활을 하며 벌꿀을 생산한다. 최새봄 씨는 이 모습이 그 어떤 스마트공장에 버금갈 만큼 정밀한 협업의 극치라고 설명한다. 양봉을 통해 협업과 연대의 힘을 느끼고 있다는 최새봄 씨. 지역 4-H 활동과 양봉연구회 및 협회 활동도 함께하고 있다. 양봉산업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함이다.
“양봉을 시작하고 양봉인들 모임에 간 적이 있어요. 400명 정도가 모였는데 20대는 저 혼자더라고요. 선배 양봉인들이 저를 참 대견해하며, 많이 응원해 주셨어요. 책임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제가 미래 양봉의 주역이잖아요.”
최새봄 씨는 현재의 양봉농장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면 치유농장을 마련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한다. 벌들과, 꽃과, 나무에게서 받은 위안을 더 많은 사람에게 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넓은 부지를 마련해 계절마다 피는 꽃나무와 과일나무를 심고,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오두막을 두고 싶어요. SNS에 시골 생활을 올리는데 도시에 있는 친구들이 엄청 부러워하더라고요. 도시민들이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어요.”
청춘이 청춘에게
농부를 꿈꾸는 젊은 청춘에게 현실적으로 조언해주고 싶은 게 있어요. 기반이 없이 창업농으로 농업을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거든요. 농업에 바로 뛰어들지 않고, 멘토를 구하거나 요청해 3년 이상 지도를 받고 안정적인 영농 정착을 위해 배움의 시간을 갖길 바라요. 기반이라는 건 토지나 농기계 등 물적인 것만이 아니라 지식, 인적자원 등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있거든요.
글 이선영 사진 봉재석 영상 전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