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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서기

시골 구석구석 발길 머무는 곳

무뎌진 미각을
깨우는 시간

순창 오일장

“오매, 꽃물 들겄네.” 상큼한 봄바람을 따라 지천에 꽃이 활짝 피었다. 그런데 순창에서는 흐드러진 꽃들보다 두릅 가지에 눈이 먼저 간다. 이맘때 아니면 먹고 싶어도 못 먹는 두릅. 나른한 입맛을 돋워줄 특유의 쌉싸래한 향을 찾아 순창 오일장으로 향했다.

순창 오일장에서 두릅 맛보고 가요~

“아따! 서울꺼정 가져가도 암씨롱도 안 혀. 이거 다 팔아도 남는 거 별로 없이야~ 하나 가져가. 많이 줄게. 이거 팔고 이제 집에 갈랑게.”

기자가 두릅을 손에 들었다 놨다 하며 망설이자 아주머니가 쐐기를 박는다. 상온에 ‘고대로’ 놔둬도 아무렇지 않다는 말을 믿고 결국 두릅 한 봉지를 손에 들었다. 오늘 저녁은 살짝 데친 두릅에 초고추장을 찍어 먹으면 집 나간 입맛도 돌아올 것 같다.

춘곤증이 찾아오는 이 무렵, 두릅나무에서 돋아난 연한 싹인 참두릅은 그 맛이 좋아 순창 두릅은 전국에서도 인기가 많다. 제철을 맞은 두릅을 사러 온 사람들로 오일장이 북적인다. 그야말로 동네 잔칫날이다.

매월 1일, 6일 장날이 서는 날이면 순창읍 남계로 일대 도로는 노점으로 덮인다. 텃밭에서 키운 채소를 가지고 나온 할매들, 배추를 가득 실은 트럭, 시장의 역사만큼 오래된 뻥튀기 기계를 돌리는 아저씨가 잔치 분위기를 더해준다. 오일장은 딱히 살 게 없더라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100년을 내려온 순창 오일장은 잡곡과 쌀이 거래되는 미곡전, 밭작물이 거래되는 밤 대추전, 순창의 대표 농산물 중 하나인 고추가 거래되는 고추전, 수산물과 건어물이 거래되는 건어물전 등 품목마다 장이 따로 설 정도로 규모가 크다. 평생을 가족 뒷바라지하며 살아오신 어르신이 가져온 나물을 다듬으며 기자에게 어디서 왔냐고 말을 붙인다. 서울서 왔다니 “여기꺼졍 머 볼 게 있다고 왔냐”며 손에 들고 있던 약과 하나를 건넨다.

금강산도 식후경, 오일장 명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시장을 걷다 출출해져 오직 장날에만 먹을 수 있다는 시장 중국집을 찾았다. 메뉴는 짜장면과 우동, 콩물국수 단 3개. 주문 즉시 뽑아주는 생면에 직접 농사지은 채소로만 만들고, 양은 곱빼기인데 단돈 5천원이다. 이러니 장날에 안 들르면 서운할 수밖에.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한다는 오일장의 명물이다. 40년째 장날에만 문을 열고 들어가는 재료도 사장님 마음대로 그때그때 달라진다. 여름에는 하지감자, 겨울에는 고구마가 짜장면 재료가 된다. 양도 많아 네 사람이 오면 3개만 시키라며 사장님이 넉넉한 인심을 건넨다.

“옛날에 엄마 따라온 애기덜이 청년 되어 와서 잡숫고 가고 그래요. 언제꺼졍 할지 모르지만 건강이 닿는헌 혀야죠.”

즉석에서 뽑은 생면가락이 씹을 사이도 없이 후루룩 넘어간다. 가격은 5천원이지만 맛은 5만원짜리 맛이다. 입에 넣는 순간 어렸을 적 먹은 짜장면 맛이 떠오른다.

다음으로 들릴 곳은 연탄불 유과집이다. 1대 어머니 때부터 60년 동안 연탄불에 유과를 굽는데 직접 농사지은 찹쌀반죽을 밀고, 연탄불에 굽고, 유과에 꽃을 찍는 일까지 전부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니, 일 많기론 순창에서 제일이란다. 기름에 튀기는 대신 연탄불에 굽는 유과는 과정이 전부 수작업이다 보니 하루 500장밖에 만들지 못하고 온 식구가 매달려 일을 한다. 그만큼 정성이 들어간 유과는 파삭하고 찹쌀의 맛이 그대로 살아 있어 맛도 식감도 최고다. 역시 순창의 명물답다.

고추장도 피순대도 맛보더랑께~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전북 순창하면 고추장을 떠올린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순대를 먹고 오지 않는다면 제대로 순창을 즐겼다고 말하기 곤란하다. 1923년 개장해 오랜 역사를 지닌 순창시장 골목에는 순댓집이 여러 군데다. 2대째 한다고 ‘2대째순대’, 대를 이어 연달아 해서 ‘연다라전통순대’, 먹어봉깨 맛있더라 해서 ‘봉깨순대’ 등. 상호도 투박하니 정감이 넘친다. 장터의 순댓집은 매일 문을 열지만, 장날이나 주말에 특히 붐빈다. 제각각 장보기를 마치고 한군데서 만나는 곳이 바로 순댓집이다. 장보고 먹는 순댓국 한 뚝배기가 어르신들 보양식인 셈이다. 일명 ‘서울 순대’라 불리는 당면순대는 먹었을 때 속이 더부룩해지기 십상인데, 피순대는 다르다. 한 입 먹으면 묵직하고 퍼석거리는 식감이 제법 편안하다. 속을 선지로 만들었으니, 철분 덩어리다. 특히 순창 순대는 인조 껍질, 찹쌀, 당면을 쓰지 않는다. 여러 번 깨끗이 씻은 돼지 창자에 선지와 콩나물, 마늘, 양파, 당근 등을 넣어 순대를 채운다. 국에 들어간 내장들도 하나같이 부드럽고 쫄깃하다. 가장 좋은 건 비릿한 내장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 순대 가게 특유의 누린내가, 이곳 순창의 순대국 집에서는 나지 않는다. 그만큼 깨끗한 재료로 온전히 만들었다는 증거일 터다.

호주머니에 쌈짓돈이 넉넉하지 않아도 시장 구경만으로도 즐겁고, 가격도 저렴한 맛있는 음식도 풍부하니 ‘가는 날이 장날이다’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인가 보다. 바야흐로 두릅 제철 맞은 순창 오일장에서 눈으로 한 번, 입으로 두 번 즐거운 미식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여행이 풍성해지는 플러스 코스

Ⓒ순창군

발효 소스 토굴

전국 최대 규모의 발효소스토굴답게 장기 숙성 중인 고추장, 된장, 간장을 비롯한 전 세계 다양한 소스를 볼 수 있다.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품들부터 지역 특색을 담은 희귀 소스까지, 한가득 모여 있는 각종 소스들을 구경하다 보면 시간 순삭이다.

Ⓒ순창군

채계산 출렁 다리

채계산 출렁다리는 무주탑 산악현수교로는 국내 최장거리인 270m를 자랑한다. 길이도 길이지만 높이 또한 지상에서 가장 낮은 곳이 75m, 가장 높은 곳이 90m에 이른다. 아찔함을 감수하고 다리에 오르면 섬진강과 적성평야의 절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이봄 사진 봉재석 영상 전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