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나서기
도시와 농촌 그 어딘가의 「사 : 이」에서
나에게 선사하는 휴식
소풍
마스크를 얼굴에서 떼고 외출이 가능하게 된 지금, 머리를 비우고 가벼운 휴식을 취하러 슬슬 나가도 좋을 시기다. 여전히 집콕, 방콕을 고수하고 있다면 여기, 몇몇 드라마나 영화로 가볍게 소풍의 분위기만 느껴볼 수도 있다.
뒤죽박죽, 소풍 같은 그런 날
<최악의 하루>
소풍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휴식을 위해 야외에 갔다 오는 것’이다. 여행은 거창하고 그보다는 약소하게 ‘그야말로 잠깐’ 나갔다 들어오는 것이 소풍인 셈. 사실 소풍이라 명명할 만한 이벤트를 자주 갖기란 어렵다.
그러나 간혹 소풍과도 같은 시간은 종종 경험하게 된다. 비일상적인 사건이 연속되는, 여주인공의 하루를 따라가는 영화 <최악의 하루>는 서울의 명소인 서촌, 남산 일대를 마치 소풍을 떠나온 기분으로 새롭게 접할 수 있다. 늦여름 서촌, 어느 날 배우 지망생 은희(한예리)는 연기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우연히 길을 묻는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이와세 료)를 만난다.
그와 헤어진 후 남자친구 현오(권율)를 만나러 촬영지인 남산으로 향한다. 같은 시간, 한때 은희와 잠깐 만났던 남자 운철(이희준)은 그녀가 남산에서 올린 트위터 멘션을 보고 은희를 찾아 남산으로 온다. 오늘 처음 본 남자, 지금 만나는 남자, 전에 만났던 남자까지. 하루에 세 명의 남자를 만나게 된 은희. 예기치 못한 사건의 연속으로 뒤죽박죽이 된 소풍 같은 하루가 펼쳐진다.
주말 안방에서 떠나는 소풍
<우리들의 블루스>
매회 제주 바닷가로 소풍을 다녀온 기분이랄까.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눈이 시원해진다. 내로라하는 주연급 배우들이 생경한 제주 사투리를 구사하면서 생활 밀착형 연기를 펼치는 것 또한 볼거리다. 친숙한 배우들이 몸의 힘을 빼고 단막극 분량의 에피소드를 채워 나가는데, 그래서인지 더욱 이 옴니버스 형식의 드라마가 긴 여정이 아닌 짧은 소풍 같은 느낌을 주는 걸지도 모른다.
호화 캐스팅으로 초반 화제를 모았던 작품답게 차승원, 이정은의 ‘케미’를 시작으로 이병헌, 신민아, 한지민, 김우빈, 엄정화 외에 김혜자, 고두심 등 탄탄한 연기력을 자랑하는 중견 배우들까지 고르게 포진되어 집중 포화에 지원 사격을 더한다. 이중 이병헌이 분한 ‘동석’을 보는 재미가 남다르다. 잠이 덜 깬 얼굴로 시장 국밥을 먹고, “골라골라 2천 원, 3천 원~”을 외치는 모습이 그야말로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노희경 작가의 복귀작으로 더욱 기대를 모았던 이 작품은 배우들이나 시청자들에게 소풍 같은 ‘리프레쉬’를 제공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떠나볼까? 경기도 산포시로
<나의 해방일지>
안산과 군포를 합성해 만들어낸 가상의 명칭 경기도 산포시에는 기정(이엘), 창희(이민기), 미정(김지원) 삼남매가 산다. 매일 서울로 통근하는 이들의 일상은 고달파 보인다. 출근하지 않는 날이면 부모님을 도와 밭일을 거드는 이 삼남매의 일상은 저마다의 애환이 있으며 이들의 삶은 각자 버티고 견디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이런 삼남매의 일상에 동네 인부 구 씨(손석구)가 나타난다. 과묵한 아버지(천호진)를 도와 일손을 거드는 그는 일하지 않을 때는 술로만 소일한다. 서울에서 뭘 하던 사람인지 이름조차 일러주지 않는 그에게 막내 미정(김지원)은 할 일을 주겠다며, 이제 곧 차가운 겨울이 닥쳐오니 술로만 세월을 보낼 것이 아니라 “자신을 추앙하라”고 말한다.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일을 끝내고 나면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미정의 말에는 묘한 설득력이 있다.
지치도록 반복되는 하루가 버겁게만 느껴진다면,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아주 작은 일을 시작해보자. 새로운 공기를 들이마시고 전과는 다른 풍경을 눈에 담아내는 거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소박한 소풍을 선사할 필요가 있다.
글 임수민(대중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