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촌공사 네이버 블로그 바로가기 한국농어촌공사 유튜브 바로기기 한국농어촌공사 페이스북 바로가기 한국농어촌공사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우리의 소확행 라이프

리틀 포레스트

느슨해져도 괜찮아

차츰 출판사 박햇님 씨

어떤 사람의 인생은 그 사람의 표정이 모든 걸 말해줄 때가 있다. 부여에서의 삶을 말하기도 전에 입꼬리를 잔뜩 올리고, 얼굴 가득 미소를 짓는 박햇님 씨의 ‘지금’은 듣지 않아도 대충 짐작이 간다. 행복하다고 말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출판사에서 일하다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온 뒤 돌고 돌아 부여에 머물며 ‘차츰 출판사’를 운영 중인 박햇님 씨의 그해 여름 이야기이다.

귀촌 1년 후, 원하던 삶에 가까워져

첫눈에 끌렸다. 대도시와 다르게 높은 건물이 없었고 도시 가운데로 흐르는 강이 주는 평화로운 모습이 좋았다. 딱히 연고도 없던 부여에 터를 잡은 지도 어느새 1년.

“대학을 졸업하고 15년 정도 줄곧 출판계에서 일했어요. 5년 차쯤 됐을 때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어요. 책을 읽고 막연히 ‘나도 지방에서 고요하게 책 만들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 꿈이 현실이 될 줄은 몰랐어요. 어쩌다 보니 이렇게 지역 출판을 하고 있네요.”

6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남편과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도 틈틈이 번역, 외주 편집, 외주 원고 작업 등을 해 온 그에게 책은 삶의 일부와도 같았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남편과의 결혼생활과 관계 등을 담은 『남편이 미워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책을 출간하며 작가로도 데뷔했다. 그리고 현재 부여군 여성창업지원센터에서 지원하는 창업지원실에 입주(현 부여군 여성문화회관 건물)해 ‘차츰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차츰’이라는 부사는 사전적으로 ‘어떤 사물의 상태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정한 방향으로 조금씩 진행하는 모양’을 의미한다. 박햇님 씨는 그 뜻을 ‘조금씩, 천천히, 올곧게 나아가는 소리’라고 받아들였다.

“책, 그리고 독서는 더디긴 하지만 언젠가는 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잖아요. 저 또한 책으로 세상을 간접 경험하며 몸과 마음이 성장했다고 믿고 있어요. 그 의미를 담아 차츰 출판사도 사람들의 성장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집수리, 벌레, 생계와의 전쟁

“남편과 결혼 후 4년 정도 유학 생활을 하고 한국에 돌아오기로 결정했을 때, 남편이 귀촌을 제안했어요. 저는 거부했고요. 그런데 돌아와서 막상 수도권 생활을 시작하자 그걸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거예요.”

2시간 이상의 출퇴근 거리, 아이랑 밥 먹을 시간도 제대로 허락되지 않는 쫓기는 생활, 도시의 각종 소음들…. 그는 뒤늦게 남편에게 귀촌을 알아보자고 했다. 귀촌하면 출판사를 해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세웠다. 주말이면 후보지를 찾아다니고, 유튜브나 지역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머물 곳을 찾았다.

“부여는 저희가 일본에서 살던 호숫가 마을과 느낌이 비슷해서 남편도 저도 그냥 이유 없이 끌렸던 것 같아요. 저는 원래 즉흥적인 성격이 아닌데, 그날 갑자기 ‘여기로 하자, 나 여기가 좋아!’ 이렇게 말했어요. 이사를 준비하면서 더 좋아졌고요.”

박햇님 씨는 부여로 내려오며 오래된 집을 매입했다. 사람이 살고 있던 집이라 큰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뒷마당이 콘크리트 바닥이 아닌 흙으로 덮여 있어 비가 오면 물이 고였다. 공사가 끝나고도 한 동안은 비만 오면 불안해서 앞뒤 마당을 정탐하게 되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지붕을 교체하니 도시에서는 본 적도 없는 온갖 곤충, 벌레들이 벽을 타고 내려왔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지금은 1년 동안의 보수 공사를 마치고 아늑한 공간이 되었지만, 만만치 않았던 귀촌 생활을 엿볼 수 있는 후일담이다.

“부여로 내려올 때 제일 큰 걱정은 생계였어요. 다행히 남편이 일자리를 잘 구했어요. 그리고 막상 살아보니 생활하는 데 드는 비용이 도시와는 다르더라고요. 동네 어르신들이 주시는 각종 채소나 과일도 있고, 로컬 농협을 이용하면 좋은 재료를 저렴하게 구할 수도 있고요. 그래서 ‘뭘 그렇게 걱정했지?’ 싶을 때가 있어요.”

정답은 없지만, 정답을 만들어가는 일상

“늘 서둘러서 사는 삶이었는데 부여에서 생활하며 적당히 느슨하고 심심한 상태가 되었어요. 아이가 유치원에 가기 싫은 날은 같이 사무실로 와요. 아이도 책상에 앉아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저를 기다리고, 점심시간에는 같이 산책하다가 벤치에 앉아서 도시락을 까먹어요. 이런 잔잔한 일상이 어떻게 보면 별것 아닐 수 있는데, 그런 소소한 시간이 결국 제 마음을, 우리 가족의 마음을 휘둘리지 않게 해준다면 그걸로 만족해요.”

온종일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사무실에서 박햇님 씨는 ‘꽃비원’ 농장(지난달 「흙사랑 물사랑」 게재)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와 미술 아틀리에를 운영하는 ‘쥬트 코리아’ 신유미 대표의 자녀교육 에세이 출간을 준비 중이다. 올 하반기에는 만나볼 수 있다고. 틈틈이 다른 출판사에서 의뢰한 리라이팅, 편집, 번역 등의 작업과 독서 모임, 고전 필사 모임을 하며 부여에 뿌리내리고 있는 박햇님 씨. 그는 부여에서 찾은 새로운 삶의 속도로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가고 있다. 어떤 일에도 정답은 없지만, 자신이 원하는 정답을 만들어 삶의 행복을 찾아가는 그를 보며 어쩌면 1년 후, 차츰 출판사에서 ‘그해 여름 부여’라는 책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여전히 플래카드를 보며 지역 소식을 접하는 문화가 있고, 병원이 많지 않아 삶이 불편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부여에서의 생활에 만족해요. 바람이 있다면 지역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아가 수도권과 지역의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답을 찾아갔으면 해요.”

이선영 사진 홍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