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비우고
그들이 사는 세상
추리소설 쓰는 생물 선생님
윤자영 씨
2018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올해의 과학교사상’ 수상, 2019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수과학도서 선정, 2019년 한국추리문학상 신예상 수상, 2021년 한국추리문학상 대상까지….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생명과학을 가르치고 현재까지 10권이 넘는 추리소설을 발표하며 색다른 ‘이중생활’을 하는 인물을 파헤치기 위해 인천해송고등학교를 찾았다.
학교가 끝나면, 미스터리 추리소설 작가로 변신
‘세상 특별한 코를 가진 신선화, 전학 온 학교의 3대 미스터리를 뒤쫓다. 별관 4층에서만 일어난다는 순간이동 현상과 이사장 동상의 비밀, 그리고 베일에 싸인 경비 할아버지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누구보다 동아리 활동에 진심인 친구들이 미스터리 추적을 시작하는데….’
추리소설 『학교가 끝나면, 미스터리 사건부』의 줄거리다. 이 책을 집필한 작가 윤자영 씨는 ‘추리소설 쓰는 생물 선생님’으로 불린다. 인천해송고에서 생물을 가르치는 윤자영 씨는 개인적인 일로 힘든 일이 많았던 2014년 우연히 추리소설을 읽다 작가로 데뷔하게 된다.
“학교 도서관 사서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질풍론도』라는 추리소설을 추천해 줘서 추리소설의 세계에 발을 들였어요.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힘든 일을 잊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학교 도서관에 있던 대부분의 추리소설을 읽었어요. 그러다 문득 과학 지식을 활용하면 ‘나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3개월간 집필해 첫 장편추리소설 『십자도 시나리오』를 자비로 출판하게 됐죠.”
『십자도 시나리오』는 ‘십자도’라는 섬에 수학여행을 간 고등학교 교사와 아이들이 생물 지식으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내용이다. 첫 작품이라 부족한 점이 많아 독자들에게 비판도 적잖이 받았다. 그러나 그는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이후로도 집필을 이어간 결과 이듬해 1월에는 『피 그리고 복수』라는 작품으로 『2회 엠블록 미스터리 걸작선』에 당선, 각색되어 KBS <라디오 문학관>에서 방송되었다. 또 같은 해 여름에는 《계간 미스터리》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가로 정식 등단하게 된다.
쓸모없을 것 같은 교과서 지식의 반전
윤자영 씨는 추리소설을 쓰면서 학생들에게 퍼져 있는 ‘쓸모없는 생물 지식’이라는 편견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생물 공부는 왜 하는 거냐. 이거 배워서 어디에 쓰냐’고 묻는 학생들에게 생물 시간에 배운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배우면 소설에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평소에도 윤자영 씨는 ‘이야기’로 학생들을 수업에 끌어들인다. 소설에 쓴 내용은 물론이고 교사의 대학 시절 이야기도 때로는 소재가 된다.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수업을 하는 셈이다.
“추리소설 작가라고 하면 학교 일에 소홀하지는 않은지 걱정을 많이 해요. 그런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대부분의 글은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학교 오기 전까지 쓰고 나오죠. 학교에서는 학생들 가르치는 것 외에도 2학년 부장으로서 할 일이 많아요. 방과 후 수업도 준비해야 하고요. 본업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죠.”
2004년 교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18년 올해의 과학교사상을 받았다. 학생 지도, 대외활동 등의 평가에서 최우수 평가를 받은 것이다. 여기에 배움중심 인증교사, 수업선도교사로서도 인정받았다.
“저는 수업을 할 때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다양한 방식을 시도해요. 학생들과 재미있게 수업하기 위해 우산에 생물방식을 그리게 하고, 혈액 단원에서는 혈액형별 성격을 분류하고 이에 해당하는 교사를 찾아오게 하는 게임 형식의 수업을 진행하며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수업에 끌어들이죠.
감동을 주는 작가이자 교사로 남는 꿈
처음에는 자비로 책을 출판한 추리소설 작가 윤자영 씨는 지금은 성인, 청소년, 아동 문학 등의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출판사에서 찾는 작가가 되었다. 올해만 해도 4권의 책이 독자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아내가 1호 독자였다가, 지금은 초등학교 5학년 딸이 초고를 봐주며 곁에서 힘이 되어 주고 있다.
“『수상한 졸업여행』은 만권을 넘게 인쇄해 더 애정이 가는 작품이에요. 한 해에도 워낙 많은 책이 출판되기 때문에 만권을 넘기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남다르죠. 더 잘 써야겠다는 책임감도 들고요.”
윤자영 씨는 부캐인 추리소설 작가의 능력을 본캐인 학교생활에도 적용한다. 그는 자기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매주 배운 지식을 활용해 시, 소설, 산문, 일기 등 자유로운 형식의 글을 써서 내도록 했다. 처음에는 생물 시간에 웬 글쓰기냐는 반응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흥미를 보이며 창의성을 발휘하는 학생들이 늘었다. 그렇게 학생들과 글쓰기 활동으로 함께 쓴 과학 추리 단편집 『해피엔드는 없다』를 펴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밤하늘의 별 보기, 작가와의 만남 등을 추진하며 학생들에게 인문학적 감성도 키워주고 있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넘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학생들에게는 단편적 지식보다는 미래 사회를 살아가는 인성을 키울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고요. 무엇보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본캐와 부캐의 경계가 없을 만큼 완벽한 이중생활 중인 윤자영 씨. 미래의 그의 모습은 충분히 추리가 가능하다. 글을 쓰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자신의 꿈을 차곡차곡 채워가는 미래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추리작가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장편소설 『교통사고 전문 삼비 탐정』, 『교동회관 밀실 살인 사건』, 『십자도 시나리오』, 『나당탐정사무소 사건일지』, 『파멸일기』 등을 썼다. 주로 성인 대상의 소설을 쓰다가 처음으로 도전한 청소년 과학 추리소설 『수상한 졸업여행』은 2019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수과학도서, 2020년 책씨앗 ‘청소년 문학’ 부문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그 외 과학 지식을 녹여낸 청소년 소설로 『수상한 유튜버 과학 탐정』, 『조선 과학 탐정 홍대용』, 『탈출! 노틸러스호』 등이 있다.
인스타그램 @mystery_yoon
글 이선영 사진 홍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