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비우고
모듈러 라이프
걷기의 기쁨을 맛보라
걷는 것을 피하다 보면 삶의 속도가 그 누군가의 의지대로 흘러가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두 발로 걷다보면 그냥 스쳐지나가던 것들에도 시선이 머물고 생각이 움튼다. 비로소 시간과 장소의 주인이 되는 기분이다. 풀내음 가득한 6월. 걷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을 이맘 때, 걷기의 기쁨을 맛보자.
활기차게 걸으면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는 뇌에 산소가 공급되고 ‘세로토닌’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행복 호르몬이라고도 알려진 세로토닌은 필수 아미노산인 트립토판에서 합성되는 신경 전달물질로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고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작용을 한다. 걷는 행위만으로 스트레스가 완화되는 것으로, 세로토닌은 걷기 시작 후 5분부터 분비되어 30분이면 최고조에 이른다.
걷기는 혈당 수치를 떨어뜨려 당뇨 발생률을 감소시킨다. 또 규칙적인 운동은 혈압 수치를 낮춰 뇌졸중 위험을 20~40%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연구에 따르면, 걷기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심혈관계 질환 위험률이 30%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걷기는 칼로리 소모와 근육 손실 예방 등을 통해 체중 조절을 돕고 비만을 막는 데도 도움이 된다.
나이가 들수록 정맥의 탄력이 줄어 하지에 있는 정맥의 혈류가 역류하는 하지정맥류가 나타날 위험이 커진다. 걷기는 하지정맥류 발생을 예방하거나 그 시작 시점을 연기할 수 있는 좋은 운동이다. 종아리와 발에 있는 정맥, 근육, 판막들로 형성된 정맥계는 혈액을 심장과 폐로 밀어 올리는데, 걷기 운동이 건강한 혈류의 흐름을 돕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관절의 가동성을 향상시키고 해당 부위의 혈류의 흐름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걷기는 나만이 오롯이 가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걷기를 통해 복잡했던 생각이 정리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경험이 그 누구에게나 있었을 터. 실제 걷기가 창의성을 60% 증진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으며, 21세기 창의적 인물로 손꼽히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는 아이디어 수렴을 위해 동료들과 ‘워킹미팅(walking meeting)’을 즐겼다고 한다.
초여름 걷기 좋은 숲길
기분좋은 잣나무 숲길
축령백림
축령산은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과 가평군 상면 사이에 있는데, 축령백림은 축령산과 서리산의 북사면에 자리 잡은 잣나무숲을 말한다. 이곳은 잣나무가 많기로 유명한 가평군에서도 가장 큰 잣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곳이다. 하늘을 찌를 듯 쭉쭉 뻗은 30년~50년생 잣나무들이 빼곡히 숲을 메운 풍경이 그림 같다. 그림 같은 숲길을 따라 걷다보면, 일상에서 쌓인 상념은 사라지고 이내 머리가 맑아질 것이다. Ⓒ가평군
가족과 함께하기 좋은
국립수목원
국립수목원이 포함된 광릉숲은 유네스코의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국내 대표적인 숲 가운데 하나다. 그만큼 수목이 우거져 있으며, 울창한 숲이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여름에도 더위 걱정 없이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인근에는 광릉이나 봉선사 등이 있어 가족단위 나들이 코스로 삼아도 좋다. 광릉숲에는 나무 종류도 많지만 다양한 식물이나 곤충 야생동물 등의 표본까지 갖추고 있어 자연 공부를 하러 가기에도 좋다. Ⓒ산림청
마음의 안식을 주는
미리내성지
미리내는 은하수를 뜻하는 순우리말로, 미리내 성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로 병오박해 때 순교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유해를 모신 곳이다. 성지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게세마니동산으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게세마니동산은 예수가 제자들을 데리고 올라가 기도하던 곳으로, 이곳에서도 천주교 신자들이 기도하는 곳을 뜻한다. 동산 산책로를 걷다보면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을 터. Ⓒ안성군
소나무 울창한 숲길
융건릉
조선의 왕릉은 어느 곳이나 소나무가 울창한 것이 특징. 융건릉도 마찬가지로 융건릉은 융릉과 건릉을 합쳐부르는 말이다. 융릉은 사도세자와 그의 비 혜경궁 홍씨를 합장한 능이며, 건릉은 정조와 효의왕후를 합장한 능이다. 융건릉 산책로는 능 전체를 한 바퀴 도는 코스를 비롯해 융릉을 돌고 건릉을 따로 도는 코스, 융능과 건릉을 오가는 코스 등 다양하다. 능 전체를 한 바퀴 도는 코스엔 약간의 오르막이 있지만 그 외는 전체적으로 평탄하다. Ⓒ수원시
음악과 함께, 같이 걸을까?
김세환
길가에 앉아서
‘가방을 둘러맨 그 어깨가 아름다워. 옆모습 보면서 정신없이 걷는데. 활짝 핀 웃음이 내 발걸음 가벼웁게. 온 종일 걸어 다녀도 즐겁기만 하네.’ 살랑살랑 부드러운 바람이 부는 날, 곧게 난 길을 걷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만약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라면 그 기쁨은 훗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도 한다. 올 여름 그 누구와 길을 떠나고 싶은가? 모두들 내딛는 발걸음마다 행복과 웃음이 활짝 피어나기를.
김동률
출발
본격적으로 걷기 운동을 즐기기 전, 신발 끈을 단단하게 묶으면서 들어야 할 것 같은 이 노래. ‘때로는 넘어져도 내 길을 걸어가네.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라는 노랫말은 걷기 본능을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걷기는 특별한 운동 기구 없이도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지만 바른 자세가 중요! 척추를 바로 세우고 배를 당기고 걸어야 몸에 무리가 없다.
양희은
산책
‘넌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앞장을 선다. 저 길 모퉁이를 돌기 전에 싱긋 뒤돌아보겠지. 가뿐 숨 삼키며 그 뒷모습 바라보다가 문득 이 평화를 잃어버릴 마음의 준비를 해 본다. 언제라도 너를 편히 보낼 수 있게.’ 홀로 천천히 걷는 시간의 고독의 시간이자, 사색의 시간이다. 자발적 고독을 통해 우리는 주어진 삶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불안 속에서도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기른다. 느리게 걷는 것은 그 누구에나 꼭 필요한 시간인 셈이다.
정인
오르막길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그래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두자. 한걸음 이제 한걸음일 뿐 아득한 저 끝은 보지마. 평온했던 길처럼 계속 나를 바라봐줘.’ 인생은 곧잘 ‘길’에 비유된다. 오르막이 언제 끝날지, 내리막은 언제 펼쳐질지 걸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끝은 있다는 것. 험난한 길일수록 누군가와 함께해야 좀 더 수월하게 걸을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글 기시윤